Page 13 - 붓다동산7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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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벽화(後佛壁畵)로 그려진 아미타삼존도 불벽(後佛壁) 뒷면에 그려진 수월관음벽화는
는 년작으로 흙벽에 채색 ×1476 아미타삼존 후불벽화 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
. 210 270cm. 으로 보인다. 두광(頭光)과 신광(神光)을 지고 선
수월관음이 관음보살을 예배하는 선재동자(善財
후불벽화로 그리기 위하여 따로 세워진 벽면 童子)를 내< 아미타삼존불도 >려다 보고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에 그려졌다. 구 머리에는 아미타불이 묘사된 보관(寶冠)을 썼으
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앞의 좌우에는 관음 며, 왼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오른손에는 버
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하고 뒤쪽으로 6명의 나 들가지를 잡고 있다. 얼굴은 넓으며, 목은 굵고,
한(羅漢)을 배치하여 원근감을 표현하였으나 상 넓은 어깨가 강건함을 느끼게 한다. 주위에 물결
하로 구분하는 2단구조의 고려불화나 16세기의 을 묘사하여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
조선불화와도 다른 것이다. 였으며, 천의(天衣) 자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아미타불 이러한 모습이 화면 전체에 표현된 파도의 곡선
의 뒤에 표 과 더불어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시된 광배 쉽게 촬영금지라 핸드폰에 담고 싶은 마음은 간
(光背)의 모 절했지만, 훌륭한 문화재를 후대에까지 전해지
양은 키를 기 위해서 눈과 마음으로만 담아두었다.
연상케 하는 불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귀중한 문화재들
것으로 15 을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세기부터 사 공부의 열기만큼 오후 햇살도 뜨거웠다. 무더
용되었다. 위를 잠시 식히기 위해 불교용품점에서 마신 오
착의법(着衣 미자 차는 꿀맛이었다.
法)은 고려 상큼한 오미자 향을 뒤로하고 두륜산 숙소근처
후기의 단아 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조
아미타삼존도 양식(端雅樣 금 있어서 가는 길에 강진 고려청자전시판매장
을 들렀다. 판매장을 구경하는데 근처에 한국민
式)을 계승한 것이며, 가슴 아래까지 올라온 군 화뮤지엄이 있다고 해서 비록 관람시간은 촉박
의(裙衣)의 상단을 주름잡아 고정시킨 매듭끈을 했지만, 강진까지 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서
대좌(臺座) 좌우로 길게 드리운 것은 조선 초기 둘러서 층을1,2 둘러보았다. 민화를 같이 배우고
의 특징이다. 내용상에서도 변화가 있다. 곧 고 있는 나로서는 짧지만 귀중한 시간이었다.
려시대의 삼존형식에 자주 등장하던 대세지보살
(大勢至菩薩) 대신 지장보살이 배치된 것은 고려
후기의 신앙대상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화기
(畵記)에 의하면 아산현감을 지낸 강노지(姜老
至) 등 수십명의 시주로 혜련(海連) 대선사 등이
그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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