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붓다동산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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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권2> 는 말이 경전에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 몹시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는 만일 끝까지 부처
다. 이것 또한 인간의 합리적인 사유를 비판하고 님께서 답변을 거절한다면 부처님 곁을 떠나겠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권위적인 종교와는 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
다른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께서는 독화살에 맞은 사람의 비유를 든 다음 그
깨달음의 효과적인 실현에 집중된 석가모니의 런 문제는“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러한 교설에 그런 목적이 필요치 않은 이론이 다.”고 깨우치고 계신다.
나 실천이 설해질 까닭이 없다. 인간의 자각에 점진적인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게 하려는 석가
필요한 사항만이 베풀어져 있다는 말이다. 깨달 모니의 이러한 방법론은 많은 교설의 시설을 필
음의 직접적인 내용에 관한 것도 경전에 자세히 요로 한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지적 능역이
나타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런 문제는 깨달음 성숙함에 따라 그에 알맞은 방법이 계속해서 설
의 대상으로 남겨져야 하고 깨달음을 이루면 저 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종교에서
절로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께서는 한 는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법이 불교
때 숲을 지나면서 나뭇잎 하나를 손에 따들고 제 경전에 등장하고 있다. 이런 교법(敎法)들을 법
자들에게 다름과 같이 말씀하신 일이 있다.“내 문(法門)이라고 한다. 각기 독자성을 지키면서
가 깨달은 법에서 너희에게 설하는 것은 이 나뭇 긍극적인 진리에 취입(趣入)하는 구실을 하고 있
잎 하나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잡아함 권 16> 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교설에서 신이나 우주의 원 석가모니 교설은 이렇게 진리에 이르는 교량적
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의 해명을 구하고 구실을 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진리 그 자체라고
자 함은 잘못이다. 만동자(蔓童子)라는 비구가 절대시 할 필요는 없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구도
하루는 부처님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던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석가모니 교설에 입각해
진 일이 있다.“이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끝 서‘전정사유(傳精思惟)’하여 깨달음을 열어야
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 하지만, 깨달음을 연 다음에는 그것에 집착해서
가. 여래는 사후에 존속하는가 안하는가.” 는 안 된다.“나의 법은 뗏목과 같은 것이니 건너
간 다음에는 마땅히 버려야 한다.”<중아함 권 54
<중아함 권 60 전유경> 다제경> 고 석가모니 스스로 경계하고 계시는 것
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해주고 있는데
석가모니 교설에서는 그러한 해명이 없으므로
년 월호6 | 2016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