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붓다동산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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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일치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판적 다면 그것을 설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도
태도와 합리적 탐구가 구도할 때의 일관된 입장 를 단념하고 싶을 정도로 석가모니의 괴로움은
이었다고 하더라도, 깨달은 뒤의 설법 때에는 바 컸다. 그가 세상에 나가 전도하게 돤 것은 오로
라문교와 같은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택할 수도 지 범천의 지극한 권청에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있다는 말이다. 실제적 전도(傳道)에 있어서는 <장아함 권 1 대본경>
이런 권위주의적인 방법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지도 모른다. 성도(成道) 후 석가모니께서는 한 이것은 당시의 종교계에서 인간주의적인 바른
때 이 문제로 깊은 생각에 빠지셨다고 전해진다. 종교의 출현이 얼마나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었
는가를 극화(劇化)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신앙하고 두려워 할 대상이 없으면 불안하고
무기력해지고 말지 않겠는가?” <잡아함 권 44> 석가모니께서 바라는 인간주의적 바른 종교가
세상에 행해지기 위해서는 이제 그‘깨닫기 어렵
그러나 석가모니께서는 끝내 그런 권위주의적 다’는 문제가 어떻게라도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
길을 택하지 아니하였다. 앞서 인용한 경문에는 다. 석가모니께서는 이 문제에 골몰하여 마침내
“오직 정법이 있어 나로 하여금 자각해 하여 깨 하나의 묘안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달은 자가 되게 하였으니 내 마땅히 그것을 신앙 말하면 중생들의‘깨닫는 능력(機)을 점진적으로
의 대상으로 삼으리라.”는 말을 따르고 있다. 다 성숙시켜 가서 마침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한
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깨달음을 열게 하려는 굳 다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론을 불교에서는 방
은 결의의 표명이다. 이것은 당시의 종교적 혼란 편시설(方便施設)이라고 부른다. 방편은‘접근한
을 깊이 고민해 보았던 석가모니의 지극한 인간 다’는 말이고 시설은‘알아내다’는 뜻이다.
애의 발로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석가모니께서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적인 사실을 깨우치는 일에서부터 설해가기
그러나 자신이 이룬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작 하였다.
똑같이 이루게 하고 싶었던 석가모니의 이러한
바램은 커다란 장벽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초월적인 진리에서
그가 이룬 깨달음은 너무나도 미묘하고 심오하 부터 설해 가는 권위주의적 종교와는 정반대의
여 탐욕에 가린 중생들에게는 도저히 실현될 수 반대의 방향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현실적 사실
가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과 합리적 사유의 중요성이 강조됨은 물론이다.
진리라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잡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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