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붓다동산7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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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를 수직적으로 줄세우는 사고 방식 속에 의 소외가 발생하는 것이다.
는 그 교리를 배우는 사람들을 줄세우는 사고 이에 반해 화쟁사상은 모든 불교 종파의 교
방식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즉 수승한 교리를 리들을 수평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지니
배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높은 근기를 지닌 사 고 있다. 모든 경전이나 종파의 가르침들은 각
람들 뿐이다. 낮은 차원은 가르침은 근기 낮은 각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모든 가르침들은
중생들을 위한 방편적인 교설이다. 교리 줄세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으며, 동시에 그 한계성을
우기는 자연 중생 줄세우기와 연결될 수밖에 지닌다.
없다. “불교 여러 경정의 부분을 통합하면 만 갈래
의 흐름[萬流]이 한맛[一味]
물론 불교적으로 중생의 이며, 부처님 뜻의 지극히
근기를 따지는 일은 세간적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음
인 기준과는 다를 것이다. 을 전개하면 백 가지 학파의
학식이 높고 높은 지위에 서로 다른 쟁론이 그대로 살
있다고 하여 꼭 불교적으 려져 조화될 수 있기 때문
로 근기가 높은 사람이 되 이다.”
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말 불타가 중생들의 근기와
이다. 그렇지만 과연 현실에 환경에 맞게 여러 교설을 설
있어서 그러한 불교적 관점 한 것이기에 가르침 사이에
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근본적인 우열은 인정할 수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 없다. 중생들은 자신의 근기
다. 결국 높은 지위와 학식 에 맞는 가르침을 잘 선택하
을 지닌 이들이 수승한 근 기만 하면 어떤 가르침을 통
기를 가진 이들로 인정되고 해서도 성불할 수 있다. 자
말 가능성이 높다. 학식 없 연 중생의 근기라는 것도 수
고 미천한 백성들은 불교적으로도 낮은 근기 직적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차원에
의 중생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자연 이러한 서의 다양성이 있다는 관점이 바닥에 깔려 있
관점은 현실적인 지배구조를 합리화하는 도구 다. 선종에서 “백정이 도살의 칼을 던지는 그 순
가 될 수밖에 없다. 불교적으로 보아서도 학식 간에 바로 부처를 이룰 수 있다”고 하며 깨달음
없고 미천한 백성들은 불교의 최고 목표인 깨 의 문을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활짝 열어놓는
달음을 추구하기에는 힘든 중생으로 여겨지고, 모습을 보이는데, 원효의 사상은 바로 그런 깨
이 생이 아닌 다음 생에서나 그런 목표를 향해 달음에 있어서의 평등을 교리적으로 뒷바침해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불교 내에서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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