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붓다동산740호
P. 9

하거나 잡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변소에서 쓰러   새벽길을 걸어야 했다.
지거나 넘어진 사람은 죽기도하고 다리가 부러     새날의 아침, 괴괴한 정막을 깨우는 신새벽의
졌다는 구변설(口 說)이 회자(膾炙)하기도 하여  계명성(鷄鳴聲)! 만복을 거머메고 어서 오라고
홀대할 수 없는 잡신인 것이다.           새해를 불러대는 간절한 절규던가! 해뜨기 전에
 본처의 조왕신은 일 년 내내 부엌에서 칩거(蟄  차례를 올리고 당상 어른들께 천년수를 빌면서
居)하면서 가족들의 선덕(善德)과 부덕(不德)을  세배를 드린다.서열에 따라 세배를 마치면 선영
치부해 두었던 비망록을 포대에 넣어 걸머지고    (先塋)을 찾아 돗자리를 옆에 끼고 다붓다붓 성
동짓날 밤에 팥죽 한 그릇 얻어 자시고, 굴뚝을  묫길에 오른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행사가 끝나
타고 천상에 올라가 옥황상제께 고(告)하여 저마  면 집에 오셔서 삼존불게 통알(通謁 부처님께 세
다에 합당한 길흉화복을 배정받아 설날 아침 굴   배 올리는 일)의 예(禮)를 잊지 않으셨다.
뚝을 타고 다시 내려와 온 가족들에게 분수에 맞
는 화복(禍福)을 나누어준다고 한다. 조왕신이야   ■입춘
말로 한국적 산타클로스 할머니였던 것이다.
 섣달 그믐날은 밤부터 조왕신을 맞이하기 위하    성급히 다가서는 입춘절(立春節)도 설 못지않게
여 집안 곳곳에 불을 밝혀 꺼지지 않게 하고 뜬  행사가 많다. 대문이나 기둥에 춘첩자(春帖子)를
눈으로 새날을 맞이해야 한다. 잠 귀신에 홀려   써 붙여서 가화만복을 축원하였고, 조상에 대한
졸기만 해도 머리털과 눈썹이 산신령처럼 하얘    추원보본(追遠報本)1)의 깊은 뜻을 담았던 것이다.
진다 들었다.                     “우후......”하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대지의
                            숨소리가 마른가지를 흔들고, 겹쳐서 짖어대는
 ■설                         까치소리는 집터를 찾으려 좌고우면 분망하다.
                            채마밭 음달진 곳에는 움파, 멧갓, 승검초(당귀)
 설날은 설빔을 입고 풍속놀이를 즐기며 먹고    등의 새싹들이 잔설(殘雪)을 들먹이면서 생명에
노는 날이 아니다. 매사에 거동을 신중(愼重)히  대한 애착이 사뭇 간절하다. 이 연약한 새싹들을
하고 한 해의 무사태평과 가화만복을 빌며 근신   솎아 내어 양념에 묻혀서 처음 맛보는 푸성귀를
(謹愼)하는 날이어서 신일(愼日)이라고도 한다.  만들어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렸다하여 입춘절식
 새해 첫 번째 오는 쥐날(上子日)에는 곡간에   (立春節食)으로 전해오고 있다.
쥐가 들어 곡물을 축내지 않기를 빌었고 용날(上   입춘절은 24절후의 첫 절후여서 한 해의 시작
辰日)에는 용왕님께 비를 구하며 풍년을 기원했   을 의미하는 일양시생(一陽始生)의 계절이다. 농
다. 소날(上丑日)에는 살찌게 먹여 농경노역(農  가에서도 농사준비를 서둘러 두었던 농기구를
耕勞役)에 부족함이 없기를 축원했고, 돼지날(上  꺼내어 손질하고 소를 살찌게 먹여 농경노역에
亥日)에는 집안에 만복이 들기를 소원했던 것이   힘쓰도록 하였다. 재(灰)거름을 재워두고, 보리
다. 누리에 덮어 내린 서릿발을 밟으며 아버지를  밭이나 뽕나무에 오줌을 내다주고 겨우내 묵혔
모시고 재 넘어 삼막골 큰댁으로 차례를 올리러   던 뒷간을 퍼내어 인분으로 두엄(거름)을 만드는

                            |7
   4   5   6   7   8   9   10   11   12   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