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붓다동산7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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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상당한 진실과 동기를 발견하도록 해 는 모순적 상황에서‘옳고 그름’이라는 양자택
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데이비슨은 소위 일의 이분법적 입장을 취하는 대신‘복수의 옳
‘자비의 원칙’ 을 강(the principle of charity) 음’이라는 모순을 용인함으로써 갈등의 국면이
조하면서“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는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 그들이 옳다고 생각해 입장을 말한다.
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3.‘옳음’과‘옳음에 대한 견해’는 다르다 :
한편 화쟁의 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견해가 일종의‘조건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사실과 진실의 문제
한다.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은 고통이다) 사실과 진실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
와 같은 종교적 가르침도 예외는 아니다. 조건문 다. 그러나 실제 용례를 살펴보면 두 단어 사이
이기 때문에 일정한 관점을 전제한 것이며 그 의 에는 작지 않은 의미의 차이가 있다.‘사실’이란
미는 그 견해가 설파되는‘맥락’에 의존하고 있 단어 앞에는‘나의’혹은‘저 사람의’등과 같은
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조건’을 결한 그리고 소유격이 사용되지 않는다. 반면‘진실’이란 단
맥락을 떠난 절대적 견해는 없다. 특정한 의미와 어 앞에는 다양한 인칭의 소유격을 사용하는 것
맥락에서만 참일 수 있다. 이 가능하다. 사실이 객관적인‘단 하나’의 실제
진영논리는 견해의 조건성과 의미맥락을 용인 를 상정하는 것이라면 진실은 주관적인‘복수’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는 무조건 옳다. 그리 의 실제를 상정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컨
고 상대의 견해는 무조건 틀렸다. 그러나 무조 대 사실은 하나이지만 진실은 여럿일 수 있다는
건의 견해는 없다. 화쟁의 개시개비는 모든 견 것이다.
해가‘조건적’임을 용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서 년에1950 개봉된 구로사와 아키라(黑澤 明)감
로 충돌하는 배타적 견해를 양자택일의 갈등국 독의 영화“라쇼몽(羅生門)”은‘하나’의 사실에
면으로 이해하지 않고 둘 다 맞는 말로 받아들 대한‘여럿’의 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 때, 다시 말해서‘모순’을 용인할 때 상황을 살인 사건에 연루된 세 사람과 이를 지켜본 목격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다. 중도(中 자의 진술은 제각각이다. 영화는 네 사람의 엇갈
道)가 바로 이것이다. 중도란 어느 한 극단(極 리는 진술을 통해 인간의 조작적 기억과 그 바탕
端)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 극 에 있는 자기보호 본능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단을 떠나 일종의‘무중력’의 상태에 있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
아니다. 서로 대립하는 주장을 떠나 새로운 견 주고자 하는 것은 각 진술에 담긴‘거짓’이 아니
해를 만들거나 혹은 양비양시(兩非兩是)의 무견 라 각 진술에 담긴‘진실’이다. 네 사람은 각자
해 / 무입장이 곧 중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도 가 경험한, 서로 다른 진실‘들’을 얘기하고 있
년 월호6 | 2017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