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붓다동산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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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아기를 낳자 친정 데와다하로 가던 길을 돌려 까 말하였다.
삐라왓투로 되돌아왔다. 태어난지 5일 만에 명명식(命名 마하빠자빠띠
式)을 가졌는데 그때 받은 이름이‘싯닷타’이다. 왕비 마야부인은 야외에서 갑자기 출산을 한 탓인지
아시따 선인 불행하게도 아기를 낳은지 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히말라야 산 기슭에 아시따라는 선인이 살고 있었는 숫도다나왕은 왕비를 잃고 샤까족 장로들을 모아 회
데 그는 싯닷타의 할아버지 시하하누의 제사장이었고, 의를 한 결과 마하빠자빠띠는 태자의 이모(姨母)이니
숫도다나왕의 어릴 때 스승이었다가 지금은 그의 제사 태자를 양육하는데 적임자일 뿐만 아니라 대왕을 섬기
장이기도 하다. 아시따 선인은 신들이 찬탄하는 위대 는데도 적절한 분으로 중론을 모아 마야왕비의 동생이
한 인물이 보고 싶어 까삐라왓투를 찾아 샤까족들에게 자 태자의 이모인 마하빠자빠띠를 새 왕비로 맞아 들
말하였다.“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뵙고 싶어 였고, 샤까족여인 명500 중에 32명을 선발하여 여덟
왔습니다.”숫도다나 왕은 아시따 선인을 정중히 맞아 명은 안아주는 일, 여덟 명은 목욕시키는 일, 여덟 명
모시었다. 마야왕비가 아기를 안고 나와 아기머리를 은 젖먹이는 일, 여덟 명은 재미있게 놀아주는 일을 맡
선인에게 돌려 절을 시키려 하였으나 아기의 몸이 저 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성안에 삼시전(三時殿)이라
절로 돌아 선인의 발로 향하였다. 다시 숫도다나왕이 하여 봄궁전(春殿), 여름궁전(夏殿), 겨울궁전(冬殿)을
아기를 몸소 안고 절을 시키려 하였으나 역시 아기의 지어 계절에 따라 불편함이 없이 놀도록 주선해 주었
위치가 저절로 반대로 돌아 선인에게 절하기를 거절하 다. 아버지 숫도다나의 지극한 사랑과 계모 마하빠자빠
였다. 그 때 아시따 선인이 말하기를“왕이여! 아기의 띠의 보살핌으로 부족함이 없이 자랐으리라 생각할 뿐
머리를 저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제가 오히려 아기의 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태자의 나이 10세가
발에 절을 해야 합니다.”라며 아시따 선인이 자리에서 넘어 철이 들면서부터 자기의 현실과 실존에 대한 자각
일어나 아기에게 절하자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이 생기면서 심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숫도다나도 어린 싯다타에게 절을 했다. 것이다. 동생 난다와 여동생 순다리난다가 태어나면서
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아시따 선인은 눈물을 흘 부터 마하빠자빠띠가 친어머니가 아닌 이모(姨母)였다
렸다. 숫도다나왕은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물으니,“이 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천애지각(天涯地角)3)에 외로이 떨
아기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상 相32 ( ) 80종호(種好)를 어져 있는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낳아주신 친어머니의
갖추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두 가 지독지정(祗犢之情)4)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만약 싯닷다 태자가 왕궁에 계속 있게 된다면 장차 그 분 없이 살기가 힘이 들었다. 내 인생의 모든 기쁨
전륜성왕이 될 것이요, 출가를 하여 수행자가 된다면 은 사라져 버렸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태자의 고
정각을 이루어 부처가 될 것입니다. 싯닷다 태자가 부 독이 어떠하였는지 유추하고도 남는다. (과거현제 인
처가 되어 법을 설할 때 자신은 이미 나이가 많아 붓다 과경 3-633-634) 고행림에 도착하였을 때 태자와 헤
의 설법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슬퍼서 웁니다.”라고 어지지 않으려는 찬나(마부)에게 이르기를“내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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