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붓다동산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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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이야기 (2)
의병승 의 장수가 되다(義僧兵)
금구 동정산진법사웅단
년에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근왕 은 물론, 그 실천방도를 제시하였다. 그는 국방
문(勤王文)과 스승 휴정(서산대사)의 격문을 받 에 있어서도 깊은 관심과 산성수축 등을 착안하
고 의승병을 모아 순안으로 가서 휴정과 합류하 여, 실행하였다. 그가 수축한 산성은 팔공산성
였다. (八公山城)·금오산성(金烏山城)·용기산성 (龍
그곳에서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어 의승 起山城)·악견산성(岳堅山城)·이숭산성(李崇
병 명을2000 이끌고 평양성과 중화(中和) 사이 山城)·부산성(釜山城) 및 남한산성(南漢山城)
의 길을 차단하여 평양성 탈환의 전초 역할을 담 등이다. 그리고 군기제조의 계획을 수립하여 해
당하였다.1593년 1월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인사부근의 야로(冶爐)에서 활촉 등의 무기를
되었던 평양성 탈환의 혈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만들었고, 투항한 왜군 조총병을 비변사에 인도
전공을 세웠고, 그해 3월 서울 근교의 삼각산 노 하여 화약제조법과 조총사용법을 가르치도록
원평(蘆原坪) 및 우관동 전투에서도 크게 전공을 하였다.
세웠다.선조는 그의 전공을 포상하여 선교양종 ■ 왜인들을 호령한 유정의 신통
판사(禪敎兩宗判事)를 제수하였다. 유정(사명대사의 승명)이 년1604 8월 조정으
그 뒤 네 차례에 걸쳐 적진에 들어가서 가토 로부터 수신사의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가니, 왜
(加藤淸正)와 회담을 갖고, 특히 2차의 적진 담 인들은 그의 도술을 실험하여 기를 꺾고자 하였
판을 마치고 돌아와 선조에게 그 전말과 적정을 다. 왜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하였는데, 그가
알리는 <토적보민사소(討賊保民事疏)>를 올렸 학문이 깊고 도가 높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으므
는데, 이 상소문은 문장이 웅려하고 그 논조가 로 처음에 그가 가는 길목에다 비단 병풍을 설치
정연하여 보민토적(保民討賊)의 이론을 전개함
년 월호14 | 2016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