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불교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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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5-11 14:56 조회5,777회 댓글0건본문
1. 머리말
대체로 불교미술사를 공부하는 여러 학자들이 대승불교 즉, 북방불교미술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 발표를 하였으나 남방불교미술에 대해서는 조금 소홀한 느낌이 있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부터 동남아시아 즉, 태국·캄보디아·인도네시아·스리랑카·버마(미얀마) 등지로 전파된 불교를 남방불교라 하며 또는 소승불교라고도 한다.
인도, 파키스탄, 쿠차, 서역(실크로드),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전파된 불교를 대승불교 또는 북방불교라고 한다. 이외에 티벳, 몽고 지역에 전파되어 현존하는 라마교를 포함하면 불교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경에 발생한 불교는 BC 3세기 경 간다라 지역(파키스탄)을 경유하여 히말라야 산맥 동북부를 넘어간 북방불교와 인도 남부를 거쳐 BC 3세기 경에 해상으로 실론(스리랑카), 버마, 태국 등지로 전파된 남방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양자간에는 교리는 물론 지리적인 자연 환경이나 생활 환경 속에서 발전된 불교미술품 역시 때로는 상반되면서도 동질적인 특성을 찾아볼 수 있어 흥미롭다.
2. 교단의 분열
석존이 입멸한 후 그의 제자들은‘스승의 인격에 의지하지 말고 가르침 즉 법(法)에 의지하라’는 스승의 유훈에 따라 붓다가 살아 계실 때 설하신 교법을 결집(結集)하고 해석 연구하는데 몰두하였다. 즉 붓다가 남긴 이른바 8만4천의 법문(法門)은 말 그대로 진리에 입문하는데 불과하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 해석을 통하여 깨달음 즉 진리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불교의
교리를 결집 해석하는 단계에서 대체로 초기불교 또는 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불교의 초기 분열은 석존 입멸 후 100년이 지날 무렵 2차 결집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석존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모여 합송(合誦)을 하게 되었는데 제자들간에 이론(異論)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서로 다른 이론으로 나누어져 여러 부파로 분열하게 되는데 이를 부파불교라 하고 그 이전 시기를 원시불교라고 칭한다. 부파불교는 상좌부게와 대중부게로 나누어지며 상좌부게는 서 북방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대중부게는 점차 남방으로 발전해 나아가게 된다. 이때 대중부게는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연관되는데 이는 초기에는 남쪽에서도 대승불교가 흥기하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고 부파불교를 소승불교(小乘佛敎) 또는 남방불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승불교가 발생한 정확한 연대나 소승불교와의 관계 또는 교단의 성격 등 기본적인 문제들에 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어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성격을 명확하게 한마디로 일축하여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승은 큰수레라는 뜻으로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모든 중생을 피안(彼岸)의 세계로 날라다 주는 큰 수레와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반면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전개한 불자들은 종래의 부파불교를‘소승’즉 작은 수레라 불렀고 그것은 출가승(出家僧)을 위주로 한 편협한 불교라고 비난했다.
출가승들의 안일한 삶과 신도들의 물질적 공양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만의 정신적 평안만을 구하는 소극적이고 현세 도피적인 경향에 반발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할 것을 목표로 세운 새로운 대중적 불교를 제창하였다. 대승불교도들은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생사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이타행(利他行)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적 불교를 제창하고 있어 중생구제와 성불의 이치를 설파하는 좀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종교이념을 가진 교파라고 말한다.
이러한 대승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보살(菩薩)의 개념이다. 반면 소승불교에서는 보살이란 어디까지나 석가모니 부처와 같이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위였고 불(佛)이든 보살이든 다 범부 불교도들은 바로 이러한 보살의 이상을 보편화하여 누구든지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름아닌 석가모니 부처가 이룩했던 것과 같은 성불 그 자체
였다. 부파불교 논서들의 형성과 더불어 불교경전은 경·율·논 등 삼장(三藏)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그 교설은 오랫동안 구전되어 전수되어 오다가 1세기경 실론에서 처음으로 문자화되었는데팔리어로 기록되었다. 소승불교에서는 현재까지도 모든 경장을 붓다 생존시에 사용되었던 팔리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계율과 경문을 중히 여기는순수하고 소극적인 교파라고 말하고 있다.
3. 남방불교미술
남방불교는 인도의 아육왕(阿育王) 이후 남인도를 경유하여 실론과 버마(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바 등 인도를 중심으로 하여 남방으로 전파된 불교문화로, 이 지역은 대체로 더운 지역이면서 남방불교문화의 특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아육왕 즉 아쇼카(Ashoka)왕은 기원전 3세기경 인도 마가다국의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이다. 아쇼카왕은 5천축국(五天竺國)
을 통일하면서 불교를 숭상하고 선전하여 세계적인 종교로 만들었다.
남방불교미술을 대표하는 것은 불상이나 여타의 신상보다는 사원 건축물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사원 건축은 스투파, 찬디(본존불을 안치한 법당), 승원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물로 손꼽히는 인도네시아의 보르부드로(8세기 말),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트(12세기 중엽), 미얀마 양곤에 있는 쉐다곤 파고다(11세기)는 불가사의한 불교 유적지로 신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남방불교미술의 진수들이다.
태국의 수코타이(12세기 말), 아유타이(11세기)의 스투파도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로 중앙의 승당을 중심으로 4~8겹의 네모 반듯하게 배치된 수많은 소사당이 겹쳐 있다. 중심 승당에는 4면 불상이나 불사리, 부처님의 유품이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지고 있는데 원을 중심으로 4각, 8각, 16각등의 건축 양식은 우주를 기본 원리로 만들어진 만다라 형식의 상징을 가진 건축물들이다.
주변의 부수적인 여타의 건물들은 대개 중심을 향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조된 회랑이나 스님들이 기거하며 불법을 공부하는 강당이 대부분이다. 중심부 복발형의 첨탑은 부처님의 소리를 영원히 멀리까지 전파한다는 종(鐘)형이고 상륜부의 병형은 중생 구제를 염원하는 신비로운 보병을 상징한다. 불교문화권 가운데 미개발 지역이 대부분 동남아시아에 속해 있는데 미얀마, 캄보디아가 대표적이다. 현대 문명의 개발로 불교문화재가 변형, 파손되지 않고 원형이 가장 잘 보관되어 있는 지역이 이 두 나라에 속한다. 인도나 서역 지역의 불교가 힌두의 영향으로 불교문화재나 불교가 원형이 변질되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승불교
지역 가운데 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는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의 대표적인 사원 건축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태국의 불교유적
(1) 태국의 수코타이(Sukhothai)지역
태국의 수코타이는 12세기에 수코타이 왕국이 건설되어 1947년 국호를 타이(Thai)로 바꿀 때까지 사용되었던 왕국의 이름이었다. 이 지역은 비교적 남방불교 쪽에서도 일찍 발달된 불교유적지로 불교 유적이 가장 밀집된 곳이다. 이 유적은 더운 나라에서 발생한 건축의 형태나 불상으로서 남방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형성 발전되어 있다. 물론 북방불교의 미술에서도 중국·한국·일본에서의 불상 얼굴이 각기 다른모습으로 발전되어온 것을 볼 수 있다.

이 수코타이 탑은 남방불교에서 볼 수있는 전형적인 탑의 모습인데 이러한 탑은 북방불교 계열의 중국이나 한국·일본에서는 불 수 없는 탑이다.
특징적으로 상륜부가 날카롭게 뾰족한 첨탑양식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 또는 기후가 더운 지방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 탑은 작은 탑이지만 큰 탑 속에는 반드시 가운데 사리를 봉안하고 있으며, 사방불을 모셔놓고 예불을 하는 승원이 되기도 한다. 탑의 외곽에 회랑을 둘러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의 기능도 하게 된다. 중국이나 한국·일본의 북방불교에서는 사리탑과 불법당,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가 분리되어 있으나 남방불교에서는 큰 탑 안에 동시에 이 기능들이 복합된다. 이것은 더운 기후로 인하여 외부로의 노출을 삼가하고 되도록이면 활동의 동선을 축소하자는데 의미가 있다할 것이다. 춥거나 온화한 기후를 가진 북방불교 지역에서는 불상도 다변화하였고 활동할 수 있는 기후적인 여건이 적당하여 굳이 복합적인 동선이 필요하지 않아 별도의 공간을 가진 사리탑과 법당들이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회랑의 개념은 불국사의 경우와 같이 석가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회랑이 둘러 있어 스님이나 불자들이 각법당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남방불교에서의 회랑은 동선으로서의 회랑이 아니고 작은 승방으로 연결된 것이어서 북방불교에서의 각 전당을 잇는 동선 기능의 회랑과는 다르다.
(3) 수코타이의 전형적인 불상
남방불교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특징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은 우리 불상의 모습과 차이점이 있다. 머리위 육계 위에 날카롭고 뾰족한 화염 모양이 올려져 있고 전체적으로 몸이 야위어 있으며, 어깨보다는 하체가 악한 편이다. 얼굴의 턱부분이 빈약하여 밑으로 좁게되어 있고 눈두덩이는 비교적 두둑한 편이며 이마가 나온 편이다
2) 캄보디아의 불교유적
(1) 앙코르와트(Angkor Wat)
남방불교 미술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태국의 수코타이와 아유타이, 그리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이야기하고 있

앙코르와트는 12세기경 앙코르왕국 당시에 세워진 사원으로 처음에는 힌두교의 사원이었으나 후에 불교사원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 앙코르와트는 세계 최대의 걸작으로서 그 규모에 있어서도 가히 세계 최대라 할 것이다. 외곽 화랑은 3중으로 되어 있으며 동서의 길이가 1500m, 남북의 길이가 1300m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유적이다. 외곽 회랑 안으로는 3단의 단으로 되어 있고 사방 모서리에 8각의 탑이 있으며 중앙에 8각 대탑이 있다. 대체로 평면의 구성은 최하단의 회랑이 4각이고 탑은 8각이 되고 상륜은 원이 되어 만다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탑 속에는 사방불을 모시고 있고 회랑의 벽면이나 탑의 부분적인 곳에 섬세하고 조밀한 부조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 앙코르와트의 조각물은 이 시기의 불교회화사에 많은 자료가 되고 그 규모도 대단하여 불벽의 길이가 700m에서 800여m에 달하고 있다. 이 앙코르와트를 기점으로 하여 사방 10km에 많은 유적들이 모여 있다. 원래는 많이 파손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이어서 유네스코에서 오랜 동안 보수를 하여

(2) 앙코르톰(Angkor Tom)
9세기 말엽에 지어진 앙코르톰은 크메르왕국의 수도인 앙코르에 대왕성(大王城)으로 건립된 것으로 거대한 중앙탑의 사면에 사람의 얼굴을 부조로 하여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이 앙코르톰은 파손이 매우 심하나 워낙 방대한 규모여서 손을 못대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대체로 평면구성은 앙코르와트와 비슷하나 이보다는 파손의 상태가 심각하다.
중앙에 가장 높고 큰 중앙탑이 있고 주변의 작은 탑들도 모두 거대한 사람의 얼굴을 부조로 조각하여 외형으로 보기에는 거대한 인면탑(人面塔)의 군상(郡像)으로 보인다. 주변을 돌아가면서 앙코르와트와 같이 외곽에 회랑이 둘러 있는데 그 규모가 앙코르와트에 버금갈 만큼 대단하다.
3) 미얀마의 불교 유적

미얀마의 수도 앙곤에서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탑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약 20여 m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높이가 992m가 되고 탑의 저변이 450여 m가 되는 거대한 탑이다. 금탑으로도 불리우는 이 탑은 벽돌로 쌓고 그 위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혔는데 그 금의 양이 무려 7톤이나 된다고 한다. 이 탑 속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8과가 들어 있다고 하며 부처님의 진신모발인 머리카락도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쉐다곤 탑은 전형적인 남방불교의 탑으로 저변에는 정방형으로 승방이 연결되어 있고 각 승방 위에는 쉐다곤 탑의 축소판
인 작은 탑을 올려 연결하여 둘렀으며 그 안에 작은 여러 층으로 기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 위에는 서양식의 종모양으로 탑신을
형성하고 있으며, 다시 그위에 보병이 올려져 있다. 상륜부에는 보개(寶蓋)로서 일산(日傘)이 있는데, 이는 왕이나 부처님과 같이 최고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2) 파간(Pagan)의 전경과 사탑
파간에는 해가 탑속에서 뜨고 탑속으로 진다고 할 만큼 많은 탑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약 2500여 개의 탑이 있다고 한다. 파간은 미얀마의 이라와디 강 중류 좌측 강변에 있는데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로서 1044년 파간에 도읍을 두고 소승불교를 받아들여 사원과 불탑을 많이 세워 건사왕조(建寺王朝)라고 불려질 정도로 융성하다가 1287년 원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지역적으로 요새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이 곳은 수백 년 동안 명문가의 근거지로 유지되어 왔으며 지정문화재 또한 많이 보유하고 있다. 파간의 탑은 대체로 방형으로 중첩된 형식이 많고 방형기단에 복발형과 흡사한 탑신과 상륜을 갖추고 있으며 뾰족한 첨탑과는 다르게 되어 있다. 대체로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벽돌로 쌓은 전탑들이 많다. 이 지역에서의 탑의 기능은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사리탑·법당·승방·수도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저택과 별장도 탑모양으로 짓는다고 한다. 파간에서는 나라의 이념이 불교에 집약되어 일반 건축양식에도 탑파양식이 주로 활용되지 않았나 싶다.
(3) 포파이 밀교사원
미얀마에는 불교문화가 철저히 생활화되다시피 하였지만 그런 중에서도 민간토속신앙도 밀교의 영향과 더불어 유적들이 전하고 있다. 포파이 지역에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뾰족하고 높은 산 위에 사원인지 성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성전이 지여져 있는데 그 산은 둥근 원기둥과 같이 독립하여 서 있고 그 위에 마치 신단과 같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은 불교의 신앙과 민간신앙의 습합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4) 포윈 마운틴의 전경과 사원
포윈 마운틴의 사원은 지상으로 축조된 사윈이 아니라 바위산에 동굴을 뚫고 사원과 불상을 붙박이로 조각하여 놓은 독특한 사원이다. 절에 전하여 오는 기록에 의하면 33,000여 개의 불탑이 있었고 3,000여명의 스님이 있었다고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 사원에 존재하고 있는 불상들은 벌집에 비유될 만큼 크고 작은 석굴에 조성되어 있다. 석굴의 크기는 매우 다양하여 볼펜 크기의 아주 작은 것도 있으며 물론 그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아주 작은 감실을 수없이 만들고 그 안에 백대리석 계통의 옥불상을 빠짐없이 봉안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서도 크게 융성하던 불교는 11~13세기 경에는 점차 세력이 약화되어 가는 현상을 보이는데 마찬가지로 불교미술에도 쇠퇴현상이 일어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불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동남아의 몇 나라와 티벳트의 라마불교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고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목불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은 석탑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며 현존하는 탱화가 가장 많이 있는 나라이다. 현대문명 속에서 야기되는 자연환경 파괴가 불교미술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양질의 화강암 석재가 많은 한국의 불교미술은 먼앞날을 밝게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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