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지 못하고 망상을 일으켜 자신에 집착하는 분별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극락세계에 이른 중생들의 모습들이 한 치라도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남이 있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목숨 건 서원. 아미타 부처님은 부처님이 되기 전 마치 날선 칼날 위에 맨발로 선 듯한 결의로 48대원을 세워 극락세계를 이뤘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부처님에 귀의하고 귀의하며 또 귀의합니다.”
업장 소멸 발원 10만 8000번 사불
벼랑 끝에 홀로 선 절박함. 아미타 부처님의 그 심정을 한 뼘이라도 닮을까 한 자 한 자 지극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써 내려간 마음들이 있다. 동산불교대학 30기 졸업생 42명. 이들은 지난 2월 22일 아미타패를 수여받았다. 10만 8000번에 이르는 나무아미타불 사불을 회향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그네들은 나무아미타불 한 번에 마음 속 켜켜이 쌓인 무명이 벗겨져 내리기를 발원하고 또 발원했다. 나무아미타불 한 번에 하심을 배우고 익혔으며, 보리심을 얻고자 노력했다. 나무아미타불 한 번에 작은 욕심에 만족하는 지혜를 배웠고 한 걸음 한 걸음 지혜의 광명으로 다가가기를 발원했다. 나무아미타불 한 번에 탐진치 삼독심에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했고 신구의 삼업으로 쌓아온 업장이 소멸되길 간절히 발원했다.
동산불교대학(학장 무진장)은 재가 불자를 위한 불교 강좌를 시작한 1992년 8월부터 학생들에게 나무아미타불 사불 10만 8000번의 과제를 제안했다. 과제가 아닌 수행으로써 불자의 신심과 서원을 다잡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이에 졸업생들은 아침저녁으로 틈만 나면 나무아미타불을 나지막이 부르짖으며 정진해온 것이다.
1쪽에 108번을 쓰는 사불. 하루 2~3장씩만 쓰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수행보단 과제라는 마음이 앞섰다는 고경남(57, 자인혜) 씨. 그러나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한 공부였기에 설레는 마음도 적지 않았다. 친정어머니에게 권해서 같이 시작했다. 힘들 때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사불의 진행사항도 물었다. 그리고 마음을 억누르던 그 무엇이 차츰 소멸하는 작은 기쁨과 2년 가까이 한 사불을 회향했을 땐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환희심을 맛보았다. 자칫 소홀할 수 있었던 친정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마음은 덤으로 얻었다고. 그는 최근 다시 펜과 마음을 다잡고 사불 수행을 시작했다.
한자로 사불을 했던 전춘택(50, 심인) 씨는 유독 남다른 경험을 했다. 입학 당시 도반들이 걱정할 정도로 그는 얼굴만큼이나 마음자리가 어두웠었다. 악몽 같던 지난날들이 그를 부여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이라크 바그다드서 근무하던 중 고 김선일 씨가 이라크 저항세력 ‘일신교와 지하드’에 납치돼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때 그는 고 김선일 씨의 도막난 시체를 수습했었다. 그 이후로도 미군의 오발과 이라크 저항세력의 테러로 인해 이름 모를 사람들의 조각난 살점과 뼈를 수습했던 그. 처참한 장면들과 상황들은 그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번뇌 사라져…가정화목은 덤
여기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 일들이 귀국해서도 그를 계속해서 괴롭혔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 죽고만 싶었던 그에게 환한 웃음과 안정을 찾아 준 것이 바로 사불이다. 한자로 쓰기에 더 더디고 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지만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써 내려갔던 시간만큼은 오롯이 참회와 가족들을 위한 발원의 시간이었다. 마침내 회향할 땐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지난 악몽들이 씻겨 내려간 듯 했다고. 환히 변한 그의 모습에 그 자신보다 도반들이 더 놀랄 정도다.
가족 간의 화목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사불이라고 자랑(?)부터 하는 김대일(49, 법향) 씨. 그는 아내, 두 딸아이와 함께 사불을 했다. 부부싸움이 생길라치면 그와 아내는 일단 각자 사불을 했다. 자녀와의 갈등이 생겨도 딸아이와 부부는 각자 사불을 한 후 다시 모여 그 일에 대해 이야기 하며 오해를 풀었다고 한다.
가까운 사이인 만큼, 가족인 만큼 그냥 덮고 넘어가려고 해 오해가 쉽게 풀리지 않았을 텐데도 그와 가족들은 사불을 징검다리로 오해를 해소해왔다. 특히 나무아미타불을 한 자씩 써 내려가면서 화가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지며 마음이 더 없이 평안해져 사불을 않더라도 다툴 일이 없다고 한다. 사불의 효과(?)를 보면서 그는 최근 방석을 하나 구입했다. 이제 가족 간의 오해가 생기면 서로 방석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108배를 한단다.
동산불교대학 2년 과정을 마친 이들은 하나 같이 사불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각자 나름의 생활 속에서 2년 동안은 사불을 통해 기꺼이 환희심을 겪었기 때문이다. 표면으로 보이는 결과물들도 대단하다. 병풍으로 내거나 나무아미타불 한자 속에 깨알 같은 나무아미타불 글씨로 채운 액자 등등. 그 정성들은 감히 부처님을 탄복하게 할 정도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은 껍데기 일뿐이다.
나무아미타불을 10만 8000번을 쓰면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물으며 내면의 삼독심을 발견하고 순간순간마다 소멸하는 그 맛. 그리고 입을 통해 마음으로부터 전해지는 나무아미타불을 되뇌는 소리. 10만 8000번 나무아미타불 사불을 회향한 그네들 마음 속 면면은 바로 부처의 소리, 법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선녀 비천상에 다름 아니다.
허공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면서 꽃을 뿌려 부처님을 공양하고 찬탄하는 천인(天人) 비천상. 부처님 앞에 두손 모아 합장하고 무릎 꿇어 온전히 마음을 공양하는 그의 모습처럼 나무아미타불 사불로 아미타불에 귀의함을 부르짖는 그네들 역시 법음을 전하는 선녀이리라.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988호 [2009년 03월 02일 12:37] 법보신문에서